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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희망은 '모든 희망에 저항하는 희망이다. (Hope against hope)', (2/2):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
작성자 구자춘 등록일 2023-03-17 10:37:46 조회수 21

Juergen Moltmann은 기독교의 희망이란 우리 삶 속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고민하였다.그는 기독교희망은 ‘희망에 저항하는 희망 (Hope against hope)’이라고 말했다.  무슨 말일까?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로마서 8:24-25).

신약이 말하는 희망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지금 보이는 희망과 지금 경험할 수 있는 모든 희망을 넘어 선다는 말이다. 이것은 ‘‘ 모든 희망에 저항하는 희망’이라는 뜻이다.  ‘모든 희망을 거스르는 희망’, 혹은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난 이후의 희망’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Moltmann그리스도인의 희망은 ‘부활의 희망’이다.  ‘모든 희망에 저항하는 희망 (Hope against hope)’이다. 왜냐하면, 부활의 희망 안에서 생명은 죽음과 갈등하고, 영광은 고난과 갈등하며, 평화는 다툼과 갈등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상으로부터 시련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위로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고통과 죽음, 그리고 억압과 굴종에 맞서는 ‘하나님의 저항’이기도 하다.

바울은 죽음을 우리의 ‘맨 마지막 원수” (고전 15:26)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거꾸로 부활의 희망은 죽음의 원수요, 또한 죽음과 함께사는 세상의 원수라고 말할 수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활의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갈등구조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부활의 희망은 저항이 된다.  세상의 고통과 죽음, 그리고 억압과 굴종에 맞서는 저항이 된다. 그래서 부활의 희망은 우리를 평안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불안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부활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미래가 아무것도 스스로 변하지 않고 죽음 안에 머무르려는 현재를 향해 무섭게 도래 (advent)하기 때문이다.                                                                                                                             

몰트만의 표현으로는 “약속의 미래라는 가시(thorn)가 현재의 우리 피부 속으로 가차 없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희망은 현실에 질질 끌려 다니지  않는다. 지금 여기 보이는 것에 우리의 희망을 의존하지 않는다. 기독교적 희망은 미래에서 온다. ‘하나님의 미래’보게 한다.  미래는 약속의 미래, 부활의 미래이다. 때문에 기독교적 희망은 세상에서 도피하지 않는다.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  미래에 집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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